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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야기

모두가 詩다.

포에시아 2017. 8. 28. 15:15




멕시코 시인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옥타비오 빠스 아저씨 왈~ 

"시는 내면의 자유를 얻는 방식이다" 

그렇습니다. 결국 우리는 시를 통해 내면의 자유를 얻고 행복에도 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고, 시를 읊어야만 자유를 얻는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건 초딩적 사유방식이겠죠...^^;

아시다시피 좀 더 근원적인 의미를 지칭하는 것으로, 

시도 시이고, 영화도 시이고, 음악도 시이고, 소설도 시이고, 사진도 시이고 그림도 시입니다.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것도 우리는 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제말이 아니라 위에 책 들고 있는 아저씨가 한 말입니다.)


시는 한자로 詩인데, 이것은 言(말씀 언) + 寺(절 사)로 이루어진 글자인데요.   

여기서 좀 더 살펴보면, 寺(절 사)= 土(흙 토) + 寸(마디 촌)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흙은 땅이고 마디는 '나눔 또는 측량'을 의미합니다. 즉 땅을 법(기준)에 맞게 나눈다는 의미쯤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옛 중국에서 땅을 관리하는 관청을 나타내는 글자로 이 寺가 쓰였나 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 글자를 불교사원인 '절'을 의미하는 글자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여기부터는 순전히 저의 추측이며 주장입니다. ㅋㅋ)

흙은 단순히 흙이 아니고 우리 존재의 토대를 의미합니다. 


우리 몸은 화학원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단백질과 지방과 수분과 기타등등의 것으로....)

그리고 이것이 흩어지면 우리라는 물리적 존재는 사라지게 되죠. (사후에 관해서는 여기서 다루지 않습니다. ^^)

즉, 흙이라는 말은 즉 '존재의 토대'라는 의미가 되죠.

그런데, 그러한 존재의 토대를 법답게 관리하는 '것' 또는 '곳' 이 곧 절의 본연적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말로 수행을 하는 곳이라는 거죠. 

이 수행처인 寺자 옆에 言이 붙으면서, 의미는 "언어를 통해 존재의 토대를 정미롭게 함"으로 확장됩니다. 

시詩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언어는 곧 '표현'이므로 존재의 토대를 정미롭게 하는 일련의 표현은 모두 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형태의 예술은 곧 시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보면, 동서양의 시에 관한 본질적 생각엔 별 차이 없는 것으로 보이네요. 


결국, "밥만 먹고 살순 없잖아~!!"라는 외침 속엔 詩가 우리 내면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고, 

'우리'라는 존재틀에서 시를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말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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