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열살 쯤이었다.목욕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돌리니 찬물만 나왔다. 그냥 나와버렸다. 얼마 후 엄마가 날 부르더니 화를 냈다. 온수가 다 빠져 버려 또 데울려면 얼마나 낭비냐며...마음 상한 난, 집에서 나와 집앞 강 고수부지로 갔다. 울적한 마음으로 코스모스 흐드러진 고수부지를 걸었다. 손으로 꽃잎을 쓰담거리며…“아..름…답..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참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내겐 너무 오글거리는 단어 였으므로그런데, 그 때 나는 내가 아닌 무언가 되어, 지상이 아닌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 떠 있는 걸 느꼈다. 알 수 없는 고요와 심연으로 내 마음은 흩어졌다.그 때 이후로 가끔, 종종, 나는 그 기분에 빠졌고, 외로워 했다.
후회살면서 잊혀지지 않는 순간 몇 번쯤 있지 않을까? 고 3때였다. 시립도서관에서 공부를.... 사실, 공부한다는 생각을 하고 갔던 그 곳에서 나는, 얼마 머물지 못하고 나왔다. 나오고 싶었다. 답답해서. 비가 내렸다. 추적추적 늦여름의 비였다. 그리고, 제법 세찬 비가 되었다. 준비했던 접이식 우산을 쓰고 도서관을 빠져나오는데, 한 여학생이 우산 밑으로 들어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갈 수 있어요?” "네......""고마워요."설레였다. 그다지 예쁜 친구는 아니였지만, 그랬다. 설레였다. 함께 얼마나 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비는 세차게 내렸고, 내 왼쪽 어깨는 다 젖었다. “어깨가 다 젖었네요. 어떻게...” “괜찮아요...”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가 왔다. 그리고, 여학생은 그렇게 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