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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열살 쯤이었다.
목욕하러 욕실에 들어갔다. 수도꼭지를 돌리니 찬물만 나왔다.
그냥 나와버렸다.
얼마 후 엄마가 날 부르더니 화를 냈다. 온수가 다 빠져 버려 또 데울려면 얼마나 낭비냐며...
마음 상한 난, 집에서 나와 집앞 강 고수부지로 갔다.
울적한 마음으로 코스모스 흐드러진 고수부지를 걸었다.
손으로 꽃잎을 쓰담거리며…
“아..름…답..다…”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참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내겐 너무 오글거리는 단어 였으므로
그런데,
그 때 나는 내가 아닌 무언가 되어, 지상이 아닌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공간에 떠 있는 걸 느꼈다.
알 수 없는 고요와 심연으로 내 마음은 흩어졌다.
그 때 이후로
가끔, 종종,
나는 그 기분에 빠졌고,
외로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