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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더 레슬러 (2008)

포에시아 2017. 12. 10. 23:01


이제 제대로 철지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 개봉한 영화 [더 레슬러]입니다. 영화가 나온지 이제 10년 쯤 되어가네요. 얼마 전 [마더!]를 본 이후 문득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0년대를 풍미했던 헐리우드 섹시 미남배우 미키 루크가 80년대를 풍미했던 프로 레슬러 '랜디'를 연기하는 영화입니다. 이러한, 배우의 인생궤적과 영화 속 삶이 유사한 영화는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 (2015)]을 들 수 있습니다. [버드맨]에서는 팀 버튼 감독이 만든 영화 [배트맨]에서 배트맨을 연기했던 마이클 키튼이 과거 버드맨으로서 명성을 날렸던 리건으로 등장합니다. 그는 헐리우드 스타로서 명성을 떨치다 이제 한물 간 배우가 되고, 자신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로 들어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우리가 사랑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이라는 작품을 연극무대에 올리고자 한다는 내용입니다. [버드맨]과 [더 레슬러]는 촬영방식도 비슷합니다. 배우의 동선을 카메라가 밀착해서 따라가는 형태입니다. 다른 점이라면, [버드맨]은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했고, [더 레슬러]는 그렇지 않았다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버드맨]을 관람하면서 [더 레슬러]가 계속 생각 났습니다. 혹시, 이냐리투가 아르노프스키의 스타일을 살짝 가져온 것이 아닐까?하고 의심도 하면서 말이죠. 아무튼, 두 영화를 본격적으로 비교해보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듯 한데요. 여기에서는 [더 레슬러]에 좀 더 집중하겠습니다. 

영화 도입부에 한 때 젊은 시절, 전설적인 레슬러로서의 랜디를 각종 매체가 보여줍니다. 그리고, 인트로가 끝날 때 들리는 쿨럭이는 기침소리, 현재의 랜디는 늙고 병든 퇴물 레슬러가 되어버렸습니다. 레슬링 쇼를 보는 관객도 적습니다. 얼마되지 않는 돈을 받아 들고, 집에 돌아가지만 세를 못내서 좌물쇠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제 그는 가난하고 혼자입니다. 스트립 클럽에서 춤추는 캐시디는 랜디와 마찬가지로 퇴물이 되어버려 손님들이 별로 찾지 않는 댄서입니다. 동병상련으로 랜디는 그녀에게 호감을 가집니다. 그러나, 캐시디는 그에게 모호한 태도를 보이지요. 레슬링 후 심장마비로 쓰러진 후 랜디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으로 캐시디를 찾아갑니다. 그 때 그녀는 그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딸을 만나보라고 합니다. 이에, 랜디는 딸 스테파니를 보러 가지만 면박만 당하고 돌아옵니다. 며칠 후 캐시디와 함께 스테파니에게 줄 옷을 사러 갑니다. 랜디는 집앞에서 스테파니를 기다렸다 만나서, 포장지로 대충 싼 선물을 내밉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빠와 딸의 정겨운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토요일 저녁 약속도 하죠. 좋은 분위기 흐름 속에 랜디는 캐시디에게 고백을 하지만 거절 당합니다. 그는 속이 상하고, 바에서 만난 여성과 환락의 시간을 보냅니다. 이튿날 하루 종일 잠을 잔 랜디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전날의 숙취 때문에 잠을 깹니다. 그런데, 이날이 딸과 약속한 토요일 밤이었죠. 뒤늦게 스테파니를 찾아가지만 딸은 불같이 화를 내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합니다. 랜디는 허전한 마음에 다시 레슬링 쇼가 벌어지는 곳으로 가고, 거기서 다시 레슬링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20년전 라이벌과 마지막 레슬링 경기를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계절적으로 겨울입니다. 모든 것이 시들고 말라버린 계절입니다. 차갑고 외로운 계절이기도 하지요. 영화의 배경이 겨울인 것은 랜디가 겪는 말년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화면은 거칠고 회색톤입니다. 여기서 잠시... 제가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는 겨우 400만화소 정도하는 디지털 카메라가 수백만원씩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코닥에서 나온 Proimage 200(이제는 영영 구할 수 없는....)이라는 필름을 사서 시진을 찍고 그것을 스캔하고, 다시 그것을 프린터로 인화를 했었습니다. 번거롭고 지난한 작업이었는데요. 이렇게 하면, 화면은 노이즈(사실은 필름그레인)가 가득하지만, 강한 컨트라스트와 색감을 구현하면서 계조를 보존한 독특한 색감의 사진 이미지가 결과물로 나타납니다. 물론 포토샵의 도움도 많이 받았었지요. 게다가, 일반 디카는 필름보다 색감, 계조, DR(Dynamic Range)이 많이 떨어졌었습니다. 그 때는 사진을 만든다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직접 암실에서 인화하는 것에 비할 수 없겠지만요. 뜬금없이 이 얘기를 왜 하냐면, [더 레슬러] 필름 촬영 후 그것을 다시 디지털 스캔 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화면 가득한 필름그레인의 노이즈가 주는 거친 질감, 강한 컨트라스트 그리고 짙은 색감은 이 영화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뭐랄까 좀 더 리얼리즘에 근접해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블랙 스완]과 [마더!]에서도 같은 방식을 쓰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화질이 나쁘다고 합니다만, 저는 이런 영상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랜디를 표현하는 것은 계절뿐만이 아니라, 그의 주변 모든 것입니다. 영화의 미장센은 꼼꼼하게 그것을 표현해줍니다. 홀로 사는 트레일러 집, 침실 옆 협탁 위의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온갖 약병들. 하드록 그룹, Guns N' Roses의 음악. 돋보기 안경, 랜디 피규어, 보청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레슬링 경기 장면. 

10년 전에 한 번 보고 이 번에 두번째로 보는 건데요. 느껴지는 것은 많이 달랐습니다. 당시엔 그저 '미키 루크의 재기영화', '한물 간 레슬러의 인생 이야기'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 번엔 '우리는 무엇으로서 사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만큼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에게 삶이란, 어떤 '이미지(또는 가면, 페르소나)'를 만들기 위함이고, 그 이미지는 곧 자신의 정체성이므로, 그것이 부서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명문대, 대기업, 판검사, 의사 등등의 것은 이미지들 입니다. 최근 한 검사는 정치적인 것에 연류되어 자살 했는데요. 검사로서 자신의 이미지가 무너지는 것은 곧 자신이 무너지는 것 이었을 겁니다.. 이미지라는 것은 실체가 없는 가짜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를 결정짓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영화에서 랜디는 자신의 전성기 때와 같이 언제나 길고 황금빛인 머리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식 이름보다는 랜디라는 애칭으로 불리기 원합니다. 랜디에게 있어서 삶은, 링 위에서 레슬러로서 관중들의 환호를 듣는 것입니다. 딸로 대표되는 가족이라는 인간관계나, 먹고 살기 위한 마트에서의 일도 그의 진짜 삶은 아닙니다. 어찌 보면 과거의 삶에 집착하며 현재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인물로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그런 것 일까요? 우리들 각자는 자신만의 페르소나 즉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이미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우리는 어쩌다 이 페르소나가 무너지거나 파괴될 때, 우리의 정체성도 파괴되고 급기야 삶 마저도 무의미해진다고 여깁니다. 딸에게 버림 받음으로써 비로서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무엇인지 깨달은 랜디는 비록 링 안에서 심장마비로 삶이 끝날지라도 온전히 불태우려 합니다. 사실, 랜디의 삶은 우리 모두의 삶이지요. 결국, 우리는 이미지라는 가상의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실제의 '나'라는 것은 없는 것이며 가짜의 이미지가 진짜의 나인 것이지요. 나는 가짜의 이미지이므로 결국 나라는 것도 가짜인 것이겠죠. 삶은 이렇게 아이러니 합니다. 


(참고로 가짜와 진짜가 혼돈되는 것에 관한 영화로 비록 장르가 다르지만, 양조위와 유덕화가 주연한 [무간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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